사격역사

초기역사

  • 기량을 시험하기 위해 표적을 쏘는 것은 총기가 등장한 1300년경보다 훨씬 오래전에 궁술로 시작되었다.
  • 총기는 우선 전쟁에 이용되었고 그후 스포츠 사격에 이용되었는데, 총기의 초기역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표적 사격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격의 초기역사는 주로 소총사격의 역사이다.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사격 시합은 1477년 독일 바이에른의 아이히슈테트에서 열렸으며 이 대회에서 사수들은 화승총을 이용하여 200m 거리에서 기량을 겨루었다.
  • 1504년 스위스에서 제작된 한 그림에는 근대적인 소총사격대회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선수들은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지붕이 덮인 사격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과녁을 쏜다.
  • 각 과녁 옆에는 작은 오두막이 1채씩 있으며 채점자들은 선수들이 과녁을 쏘는 동안 그 안에 있다가 사격이 끝난 뒤 깃대나 장대로 선수와 심판들에게 점수를 알려준다. 심판과 점수기록자들은 지붕 아래에 있는 탁자 오른쪽에 앉아 있다. 몇 개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관람석이 있다. 독일의 박물관에는 1540년경의 나무 과녁이 소장되어 있다.
  • 이런 과녁은 결혼식을 위해 만들었는데, 손님들은 과녁에 총알을 쏜 다음 주인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했다. 16세기에 소총 표적 사격은 유럽, 특히 게르만 국가에서 인기있는 오락이 되었다. 16세기말에는 안에 홈이 파인 소총 총신 및 매우 정교한 가늠자나 가늠쇠와 더불어 정교하게 장식한 독일제 격발장치가 등장했다. 이것은 아마도 표적 사격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국내 사격의 변천

  • 우리나라의 사격은 195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나, 경기가 아닌 사격의 역사는 총포가 도입된 16세기 말부터이다. 그러나 이 당시의 사격은 규칙을 정하였거나 조직화된 운영이 아니었다.
  • 문헌에 기록된 우리나라 사격경기의 시초는 조선시대 말 육군연성학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규칙 아래 이루어진 사격이 아니라, 단순히 장총으로 서서쏘기·무릎쏘기·엎드려쏘기 등으로 명중률의 우열을 가리는 정도였다.
  • 우리나라가 정식 사격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된 것은 광복 이후 1955년 2월 대한사격협회(대한사격연맹의 전신)가 창설된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 1971년 제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종합성적 제1위로 아시아 최고의 사격국가가 되었고, 이후 우리나라의 사격은 경기시설과 기술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110년이 넘는 역사 있는 대회로서 4년 주기로 이루어지며, 1978년 9월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 태릉종합사격장에서 개최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는 71개국 1,518명이 참가하였으며,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개최되었다.
  • 1955년부터 전국적으로 사격팀이 창단되었고, 현재 520여개팀 3,800여명의 선수가 등록되어 있으며, 5,000여명의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