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의역사

2018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8월31일~9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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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의역사

초기사격의 역사

기량을 시험하기 위해 표적을 쏘는 것은 총기가 등장한 1300년경보다 훨씬 오래전에 궁술로 시작되었다.

총기는 우선 전쟁에 이용되었고 그후 스포츠 사격에 이용되었는데, 총기의 초기역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표적 사격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격의 초기역사는 주로 소총사격의 역사이다.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사격 시합은 1477년 독일 바이에른의 아이히슈테트에서 열렸으며 이 대회에서 사수들은 화승총을 이용하여 200m 거리에서 기량을 겨루었다.

1504년 스위스에서 제작된 한 그림에는 근대적인 소총사격대회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선수들은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지붕이 덮인 사격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과녁을 쏜다.

각 과녁 옆에는 작은 오두막이 1채씩 있으며 채점자들은 선수들이 과녁을 쏘는 동안 그 안에 있다가 사격이 끝난 뒤 깃대나 장대로 선수와 심판들에게 점수를 알려준다. 심판과 점수기록자들은 지붕 아래에 있는 탁자 오른쪽에 앉아 있다. 몇 개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관람석이 있다. 독일의 박물관에는 1540년경의 나무 과녁이 소장되어 있다.

이런 과녁은 결혼식을 위해 만들었는데, 손님들은 과녁에 총알을 쏜 다음 주인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했다. 16세기에 소총 표적 사격은 유럽, 특히 게르만 국가에서 인기 있는 오락이 되었다.

16세기말에는 안에 홈이 파인 소총 총신 및 매우 정교한 가늠자나 가늠쇠와 더불어 정교하게 장식한 독일제 격발장치가 등장했다. 이것은 아마도 표적 사격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국내 사격의 변천

우리나라의 사격은 195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나, 경기가 아닌 사격의 역사는 총포가 도입된 16세기 말부터이다.

그러나 이 당시의 사격은 규칙을 정하였거나 조직화된 운영이 아니었다.

문헌에 기록된 우리나라 사격경기의 시초는 조선시대 말 육군연성학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규칙 아래 이루어진 사격이 아니라, 단순히 장총으로 서서쏘기·무릎쏘기·엎드려쏘기 등으로 명중률의 우열을 가리는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정식 사격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된 것은 광복 이후 1955년 2월 대한사격협회(대한사격연맹의 전신)가 창설된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1971년 제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종합성적 제1위로 아시아 최고의 사격국가가 되었고, 이후 우리나라의 사격은 경기시설과 기술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110년이 넘는 역사 있는 대회로서 4년 주기로 이루어지며, 1978년 9월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 태릉종합사격장에서 개최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는 71개국 1,518명이 참가하였으며,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개최되었다.

1955년부터 전국적으로 사격팀이 창단되었고, 현재 520여개팀 3,800여명의 선수가 등록되어 있으며, 5,000여명의 동호인이 활동하고 있다.